가을여행 허클베리 핀처럼, 나무 위의 집
등록 2019.10.13 수정 2019.10.14
나무 위의 작은 집. 오두막에 보물을 숨기고 소중한 친구에게만 보여준다거나, 탐험대원처럼 망원경으로 밖을 관찰한다거나, 숲에 둘러싸여 풀벌레 소리에 잠들었다 새 소리에 깨어난다거나.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이 현실이 됐다. 나무 위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 ‘트리하우스(Tree house)’에서.
나무로 만든 집, 트리하우스에서 어릴 적 로망을 실현한다.
트리하우스는 나무 위의 집이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속 오두막을 생각하면 된다. 동화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 여겼던 트리하우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016년,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함으로써 숲속 야영장에 트리하우스를 지을 수 있게 됐다. 그 바람을 타고 휴양림이나 개인 사유지에도 트리하우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숙소, 전망대, 숲 체험장 등 용도도 다양하다. 그중 강원도 홍천군 까르돈의 ‘참나무 위의 집’, 전북 무주향로산자연휴양림의 ‘숲속나무집’, 전북 남원 백두대간생태교육장의 ‘트리하우스’는 몸을 누일 수 있는 트리하우스다.
국내 트리하우스를 대표하는 경기도 평택시의 ‘평택 트리하우스’
트리하우스는 밀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 형태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섬의 코로와이족은 숲속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데 그 높이가 지상에서 35m 정도 된다. 맹수의 습격이나 적들의 침입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트리하우스는 나무로만 짓는다. 지지대도, 벽도, 바닥도 모두 나무다.
나무가 어떻게 집이 되는 걸까. 여러 그루의 나무에 걸쳐 짓기, 그루터기 위에 짓기, 가지 사이 공간에 짓기 등 트리하우스의 건축공법은 다양하다. 나무 옆에 지은 집도 넓은 범주에서는 트리하우스에 속한다. 살아 있는 나무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나무 기둥이나 나뭇가지가 집 안팎을 관통하기도 한다. 성장이 멈춘 나무 또는 자연적으로 잘린 부위를 지지대로 삼으면 나무에 스트레스가 적게 간다.
숲속에 터를 잡은 트리하우스
울창한 참나무가 방을 관통하는 트리하우스 내부
“얼핏 봤을 땐 숲뿐이었는데 다시 보니 집이 있네?”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자리한 ‘평택 트리하우스’의 첫인상이다. 평택 트리하우스는 국내 트리하우스계의 대부, 트리하우스코리아 정지인 대표가 지은 숲속 펜션이다.
“사랑하는 우리 딸,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볼까?” 딸에게 건넨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아빠는 딸의 그림을 도면 삼아 나무로 된 집을 만들었다. 조경 일을 하던 정 대표는 그 후 트리하우스 전문가로 전업했다. 경기도 용인자연휴양림과 경남 합천군 황매산군립공원, 거창군 금원산 자연휴양림 등 전국의 굵직한 트리하우스가 그의 손을 거쳤다.
평택 트리하우스는 내비게이션을 찍지 않으면 입구를 지나칠 정도로 숲에 폭 파묻혔다. 정 대표의 계획대로다. 자연과 하나 되는 공간을 지향했기에 ‘트리하우스가 밖에서 안 보여야 성공’이란다. 숙박시설 6동 중 트리하우스는 총 4동, 그중 입구 근처의 ‘떡갈나무’ 트리하우스는 숙박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입구에서 언덕길을 따라가면 트리하우스 ‘은행나무’, ‘톰 소여’, ‘허클베리’가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숲의 한 부분이 되는 나무 위의 집
트리하우스가 흥미로운 점은 숲이 촘촘한 덕에 나무인지 집인지 언뜻 보아선 구별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란 없다. 트리하우스는 나무 그 자체, 숲의 일부다. 소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가 우거진 숲은 집을 끌어안고 트리하우스의 창에는 숲이 그득 담긴다. 숲속에 있다고 생활이 불편하진 않다. 모든 트리하우스는 침대, 주방, 화장실, 수납공간까지 살뜰히 갖췄다. 주방 찬장에는 조리도구가 야무지게 들어차 바비큐는 물론 웬만한 요리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참나무를 지주목으로 삼은 ‘떡갈나무’ 트리하우스. 현재 숙박객을 맞이할 준비 중이다.
대부분의 트리하우스는 아담한 크기지만 편의시설을 충실히 갖췄다.
‘허클베리’는 산 중턱의 오두막 같은 집이다. 올곧은 소나무를 지주목으로 삼고 산비탈을 다듬어 지상 5m 높이에 집을 지었다. 16.5㎡(약 5평)의 집은 복층 구조다. 아이들은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을 오르내리느라 퍽 신나겠다. 넓지 않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침대, 주방, 테이블, 화장실이 오밀조밀하다. 어릴 적 소꿉놀이를 하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정답다.
허클베리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흔들다리와 도르래 바구니가 있어서다. 흔들다리는 숲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다. 걸음에 맞춰 양옆으로 리듬을 타는 다리 덕에 입구부터 흥이 난다. 도르래 바구니는 지상과 트리하우스를 잇는 ‘필수템’. 짐을 바구니에 넣고 난간에 매달린 줄을 쭉쭉 잡아당기면 된다. 별것 아닌 듯해도 도르래 줄을 쥐어볼 일 없는 도시인에게는 별난 즐길 거리다.
[왼쪽/오른쪽]산 중턱의 ‘허클베리’ 트리하우스/‘허클베리’ 입구로 이어지는 흔들다리
트리하우스의 소소한 즐길 거리, 도르래 바구니
2동의 집이 연결된 ‘톰 소여’는 가장 트리하우스다운 면모를 지녔다. 튼실한 참나무 기둥이 방과 테라스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땅에서 올라온 나무가 방을 뚫고 지붕으로 솟구쳐 하늘로 뻗어 나간다. 방에 나무가 있어서일까. 나무 내음이 짙다.
테라스는 방보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테라스 주위엔 벽도 창문도 없다. 초록의 숲이 그림처럼 펼쳐질 뿐이다. 빌딩 숲이 아니라 자연의 숲에 둘러싸인 느낌, 코로 밀려드는 청량한 숲 내음,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고요가 마음을 쉬게 한다. 지상 3m 높이에 있으니 나무를 보는 시선 역시 달라진다. 땅에선 나무 밑동을 보는 일이 고작일 텐데 트리하우스에선 나무 꼭대기와 눈을 맞춘다. 땅에서 볼 수 없던 풍경이 보이고 땅에서 닫혔던 감각이 열리는 순간이다.
[왼쪽/오른쪽]소나무 여러 그루에 걸쳐 지은 ‘톰 소여’ 트리하우스/소나무 기둥이 바닥과 지붕을 관통하는 객실
‘톰 소여’에 딸린 테라스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숙박객
‘은행나무’는 펜션 입구와 가까워 숲속 오르막길이 버거운 사람들에게 알맞다. 은행나무를 지주목으로 삼은 복층 숙소의 하이라이트는 2층이다. 2층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 난 창으로 달빛이 스민다. 2층 테라스에서는 의자를 눈여겨보자. 나무 그루터기를 의자로 만들었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티타임을 즐겼을 듯 사랑스러운 생김새다.
‘은행나무’ 트리하우스 2층. 천장과 벽, 창틀 등을 목재로 마감했다.
나무 그루터기를 의자로 삼은 2층 테라스
평택 트리하우스에는 TV가 없다. 와이파이도 안 된다. 자연을 즐기거나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의도다.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디지털에서 탈출한 현대인이 나무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책 읽기, 요리하기, 낮잠 자기, 산책하기, 가을 햇볕을 받으며 광합성하기, ‘카톡’ 말고 상대방 눈을 보며 이야기하기, 보드게임 하기….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나무의 감촉을 느끼고 숲 내음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세 흐른다.
트리하우스에 머무는 것은 다음의 문장들을 함축한다. ‘나무 위의 집을 꿈꾸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방 안과 창밖의 나무와 눈을 맞춘다. 나무 이름을 다섯 손가락에 꼽지 못하는, 자연에 대한 무감함을 반성한다. 스마트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나무 위의 집에서 보내는 하루, 볼 것도 얻을 것도 많다.
새소리를 배경음 삼아 책을 읽는 숙박객
느티나무 집과 ‘은행나무’ 트리하우스 사이의 물놀이장
[왼쪽/오른쪽]트리하우스에 딸린 야외 테이블에서 즐기는 티타임/트리하우스에 사는 강아지와 장난을 쳐도 좋다.
여행정보
※ 위 정보는 2019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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