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 손가락 굵기만 한 얇고 긴 밀가루 떡에 국물이 찰랑거리는 떡볶이. 매콤하고 자극적인 맛이지만 청량고추의 매운맛과는 좀 다르다. 입맛을 다시며 다시 맛보게 하는 묘한 맛. 국물 색깔도 빨갛다기보다는 검붉은 빛을 띤다. 후춧가루가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카레가루가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흔하디흔한 길거리 간식이 떡볶이이건만 유독 대구 떡볶이를 ‘마약떡볶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구 마약떡볶이는 손가락만 한 밀가루떡볶이다 자꾸 생각나는 맛, 아~ 중독되네대구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황떡이니 황제떡볶이니 윤옥연할매떡볶이니 하는 떡볶이집들의 간판을 자주 보게 된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엔 그 간판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국물이 찰랑이는 떡볶이의 자태를 보는 순간 발걸음이 절로 멈춰진다.
마약떡볶이는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좀 희한한 맛으로 다가온다. 단박에 “맛있다”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마약이라는 그 이름처럼 왠지 모르게 계속 당기는 맛이 있다. 마약떡볶이를 소개하는 대구 토박이들은 호언장담한다.
“외지 사람들은 한번 먹어서 이 맛을 몰라. 처음 먹어본 사람들은 속만 쓰리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이게 집에 가면 자꾸 생각나는 맛이거든.”
대구 마약떡볶이 삼총사 중 궁전떡볶이 실제로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에 돌아갔을 때 다시 거짓말처럼 요상하게 자꾸 그 맛이 생각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래서 마약떡볶이구나. 먹을 땐 몰라도 돌아서면 자꾸 생각나는 맛!’
매콤하게 중독되는 맛, 대구 마약떡볶이 대구 마약떡볶이의 원조, 신천할매떡볶이대구 마약떡볶이는 지금은 윤옥연할매떡볶이로 불리는 신천시장의 할매떡볶이가 원조 격이다. 1976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몇 년 전 신천시장 재개발 때문에 인근으로 이전하고 윤옥연할매떡볶이로 이름을 바꿨다. 할매떡볶이는 일반적인 떡볶이와는 좀 다른, 향신료 향이 강하게 나는 묘한 맛이다. 마약떡볶이라는 별칭이 처음 붙은 할매의 떡볶이는 먹자마자 속이 아리는 자극적인 매운맛인데, 그 맛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윤옥연할매떡볶이에는 후춧가루가 가득 묻어 있다 이 집의 떡볶이에 박힌 까만 점들을 보면 한눈에도 후춧가루를 흩뿌려 만든 떡볶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국물 색깔도 진하고 탁한 주황빛이다. 그 위에 다시 떡볶이양념으로 쓰는 듯한 양념장을 한 숟가락 더 얹어주는데 그것을 풀면 가뜩이나 걸쭉한 국물의 매운맛이 더 진해진다. 보통은 떡볶이와 함께 시킨다는 튀김어묵과 튀김만두 없이는 몇 개 못 먹을 정도로 소스의 맛이 강하다. 윤옥연할매떡볶이는 대구에 들른 어린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다. 떡볶이 가게는 더 커졌는데 할매는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하고 없다. 그러면서 대구 시내에 분점도 몇 곳 생겼다.
바삭한 튀김만두를 매운 떡볶이에 찍어먹는 맛 개성 따라 골라 먹는 궁전떡볶이, 황떡신천시장 끄트머리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궁전떡볶이도 이런 대구 특유의 떡볶이와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윤옥연할매떡볶이와는 또 다른 맛이다. 한결 부드럽고 순하다. 한층 세련된 맛으로 입맛을 당긴다. 먹고 나서 속이 아리지도 않다. 떡볶이 맛에 카레 향이 은근히 배어 있는데 후춧가루는 넣지 않는단다. 카레 맛이 적당히 나는 쫄깃한 떡볶이는 국물이 찰랑거리는 물떡볶이로 중독성이 강하다. 소스와 떡을 따로 끓이다가 익은 떡을 떡볶이 국물에 넣어 만들기 때문에 떡이 퍼지지 않는다. 궁전떡볶이에 들어가는 떡은 일반 떡볶이떡과는 다른 특별한 배합으로 따로 주문한다고.
변함없는 맛을 선보이는 궁전떡볶이는 뜨내기손님보다는 지역 단골이 더 많다. 또 장사가 잘 되지만 여느 마약떡볶이집들과는 달리 분점을 내지 않았다. 분점이라고 꼭 맛이 덜하다는 법도 없지만 궁전떡볶이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분점 없이 주인 부부의 손길로만 내놓을 거라고 한다.
국물이 흥건한 궁전떡볶이 궁전떡볶이와 튀김어묵, 튀김만두 ‘황떡’이라는 후발주자도 대구 마약떡볶이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다.
청춘남녀는 매콤한 대구 마약떡볶이의 영원한 단골 맛은 윤옥연할매떡볶이와 궁전떡볶이를 반쯤 섞어놓은 듯하면서 두 떡볶이보다 조금 더 매콤하다.
“황떡”의 중간매운맛 떡볶이 이 집의 특징은 떡볶이를 순한 맛, 중간매운맛, 가장 매운맛으로 나눠놓았다는 점. 먹고 나면 향신료 때문인지 속이 약간 쓰리기도 하지만 계속 먹고 싶은 맛이다. 떡볶이 국물에서 알 듯 모를 듯 은은하게 카레 향이 번진다.
매콤한 마약떡볶이의 단짝, 쿨피스 황떡은 대구에서 가장 큰 떡볶이 업체다. 분점이 20여 군데나 되고 홈페이지도 있으며 프랜차이즈점을 계속 모집하고 있다. 대구 시내에만 분점이 10여 곳이 넘어 어디서든 쉽게 맛볼 수 있다.
매콤한 마약떡볶이의 단짝, 쿨피스 떡볶이의 단짝 친구, 튀김어묵과 튀김만두대구 마약떡볶이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튀김어묵과 튀김만두다. 대구에서는 어느 떡볶이집에서나 튀김어묵과 튀김만두를 판다. 어묵을 만두처럼 기름에 튀겨내는데 어묵의 고소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더해져 마약떡볶이와 쌍벽을 이루는 대구 분식계의 명물이 됐다. 만두는 시중에서 파는 냉동만두처럼 생겼지만 속은 좀 다르다. 고기 대신 납작만두처럼 당면만 들어간다. 보통은 바짝 튀겨낸 어묵과 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다.
갓 튀겨내는 궁전떡볶이의 튀김어묵 마약떡볶이를 먹으며 또 한 번 놀라는 건 바로 그 가격 때문이다. 둘이 먹어도 괜찮을 양이 한 접시 가득에 단돈 1,000원이다. 어묵과 만두는 각각 1,000원~1,500원. 요즘은 황떡에서 떡볶이 값을 1,000원 올려 2,000원이 되었고, 궁전떡볶이와 윤옥연할매떡볶이는 여전히 1,000원을 고수한다. 떡볶이집에 따라 어묵은 5~7개, 만두는 5~10개에 각각 1,000~1,500원이다. 그 착한 가격 덕분에 누구든 유쾌한 기분으로 양껏 먹을 수 있다.
마약떡볶이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튀김만두 대구에서 이렇게 자극적인 떡볶이가 사랑받는 건 대구의 화끈한 날씨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여름 날씨가 푹푹 찌기 때문에 그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자극적인 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열치열이다. 겨울에는 마약떡볶이를 먹으며 추위를 이겨낸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마약떡볶이를 먹는 순간만큼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떡볶이집마다 빼놓지 않고 쿨피스를 파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운 혀를 달래기에는 물보다 얼음을 띄운 시원한 쿨피스가 제격이다. 마약떡볶이와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단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