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여행 꽃무릇 붉은 물결에 내 마음도 물들어가네 ‘전남 영광 불갑산’

등록 2018.09.14

옛날에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 고민이던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다. 간절히 빌어 뒤늦게 외동딸을 하나 얻었는데 이 아이는 얼굴이 고울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효심 지극한 딸은 아비의 극락왕생을 빌며 백일동안 탑돌이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이 절의 젋은 스님은 여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귀의한 몸으로 여인에게 고백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말 한마디 못한 채 끙끙대던 스님은 탑돌이를 마친 여인이 돌아가자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봄, 스님 무덤가에 어느 풀꽃이 돋는다. 푸른 잎과 붉은 꽃이 함께 피지 못하고 번갈아 나는 모습에 사람들은 상사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모습이 스님의 절절한 사랑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품은 상사화 전설이다.

슬픈 사랑 품은 꽃무릇 군락지

불갑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불갑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 불갑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매년 초가을이면 불갑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

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의 가을은 단풍이 시작되기 전부터 붉게 물든다. 매년 초가을이면 애틋한 붉은 물결로 일렁이는 불갑산(佛甲山·516m)의 꽃무릇 덕분이다.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공통점과 비슷한 생김새 덕분에 흔히들 상사화(相思花)로 알고 있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진 붉은 꽃의 정체는 꽃무릇이다. 나무 아래 무리지어 핀다고 붙은 이름이다. 돌틈에서 나오는 마늘을 닮았다고 석산(石蒜)이라고도 부른다.

꽃무릇은 9월 초순 즈음 꽃대가 올라와 추석 전 후로 절정을 이룬다. 그 후 꽃송이가 시들면 그때서야 잎이 올라온다. 겨우내 버틴 잎은 이듬해 봄이 되면 시든다. 앞서 잠깐 소개했듯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건 비슷하게 생긴 상사화와 꼭 같다. 사람들이 이 둘을 혼동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상사화는 붉은상사화 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등 여러 종류고 꽃무릇은 한 종류 뿐이다. 또 상사화는 칠월칠석 전후, 꽃무릇은 초가을 즈음으로 꽃을 피워내는 시기도 다르다.

꽃무릇에 대해 살펴봤으니 꽃구경 나서기 전 불갑산 등산 안내도를 체크할 차례다. 전역이 붉은 물결이지만 안내도에 꽃무릇 군락지가 표시되어 있어 동선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군락지를 보면서 정상까지 다녀오는 불갑사~동백골~구수재~연실봉~해불암~동백골~불갑사로 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걷기로 했다. 주차장까지 포함해 총 7.3km, 3~4시간 소요된다. 동백골~해불암 구간은 가파른 편이니 관절에 무리가 있다면 피하는 편이 좋다. 꽃무릇 구경만으로 충분하다면 불갑사~동백골~불갑사까지 걸어도 충분하다.

상사화 축제가 펼쳐진 불갑산 공연하는 아이들활쏘기 체험하는 아이들 캐리켜쳐그려주는 모습매년 가을이면 불갑산 상사화 축제가 펼쳐진다. 꽃무릇과 더불어 다양항 행사들이 흥을 더한다

일주문부터 붉은 물결이 넘실거린다. 길 양쪽으로 꽃무릇이 가득이다. 불갑산을 찾은 건 지난 9월22일. 하루 전인 9월21일부터 사흘간 펼쳐진 상사화 축제가 한창이었다. 만개한 붉은 물결에 각종 먹거리 장터, 사진전과 시화전 등이 흥을 더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이들은 꽃구경하랴 촬영하랴 바쁘기만 하다. 평지와 산자락의 꽃무릇 만개 시기는 사나흘 차이가 있다. 모두 이번 추석이 지나면 붉은 물결은 소리없이 아스라질 것이다.

백제 불교 최초의 사찰, 불갑사

마라난타가 불갑사(佛甲寺)를 지은 덕분에 이 산은 불갑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전에는 산의 형태가 부드러운 것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모악산(母岳山)이라 불렸다. 384년(침류왕1),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는 영광 법성포를 통해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다. 일부 매립되긴 했지만 뭍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법성포는 예로부터 서해안 천혜의 항구로 서역 문물을 받아들이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이 법성포를 통해 백제에 처음 전해진 불교는 백제 최초의 사찰, 불갑사로 이어진다. 육십갑자의 으뜸인 '갑(甲)'은 여러모로 의의 깊은 공간임을 알린다.

불갑사 대웅전 전경 대웅전 내부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불갑사. 대웅전은 서향인데 부처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대웅전 정문을 열면 부처의 옆모습이 보인다. 이는 남방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알려진다불갑사 성보박물관불갑사 천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왼편에 성보박물관이 있다. 수년째 정식개관은 못하고 있지만 축제기간을 포함한 성수기에는 문을 연다. 불갑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놓치지 말자. 대웅전 기와지붕 가운데 자리한 용마루 보탑은 불갑사가 남방 불교 양식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현재 불갑사에서는 조선후기 사찰 양식만 살필 수 있다. 화재로 여러 차례 중건했기 때문이다. 불갑사 곳곳에도 꽃무릇이 자리한다. 불갑사 뿐 아니라 고창의 선운사 등 사찰 근처에 꽃무릇이 흔한 건 줄기가 한약재로 쓰였기 때문이다. 보물 제830호인 불갑사 대웅전부터 살펴보자.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고 부처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문을 열면 부처의 옆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웅전 용마루 보탑도 놓치지 말자. 모두 남방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 천왕문 근처에 자리한 성보박물관도 들러보자. 불갑사 구석구석에 대해 살필 수 있다.

꽃무릇 붉은 물결 가득한 불갑산 꽃무릇 붉은 물결 가득한 불갑산꽃무릇 붉은 물결 가득한 불갑산불갑산 정상 연실봉에서 바라본 풍광불갑산 정상 연실봉에서 바라본 풍광. 저 아래 불갑사와 불갑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불갑사에서 동백골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지만 선명한 붉은 물결 덕분에 꽃불이라도 난 것 마냥 일렁인다. 불갑사 근방에 자리한 참식나무(천연기념물 제112호) 군락지도 보인다. 이곳이 '참식나무의 북한계선'이라고 적혀있다. 여기보다 남부 지방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불갑사의 정운이라는 스님이 인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 그곳 공주가 이별하면서 준 나무 열매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을 들려준다. 꽃이나 나무 모두 못 다 이룬 사랑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갑사에서 동백골을 지나 구수재까지 이어지는 길은 고즈넉하다. 사랑의 전설 때문인지 아직 남아있는 녹음과 붉은 꽃길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수재까지 부담없는(?) 산책을 즐겼다면 이제 정상을 오를 시간이다. 지금껏 걸어온 길과 달리 된비알이 시작된다. 해불암까지는 물을 구할 수 없으니 연실봉(정상)에 오를 생각이라면 물과 간식은 반드시 챙겨가자.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오르막이 가파르다. 해불암에서 동백골로 향하는 길 화장실이 있으니 기억해두자.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산 아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루목에서 연실봉으로 향하는 나무 데크와 만나면 곧 정상이다. 나무 데크가 끝나는 지점이 바로 정상이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땀을 식혀본다. 저 아래로 불갑사와 불갑저수지가 보인다. 아쉽게도 꽃무릇의 붉은 물결은 녹음에 가려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산이건만 산을 오를 때에는 함께 했던 꽃무릇이 정상에 오르자 모습을 감춘다. 문득 십 수세기 전 백제땅을 찾은 마라난타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TIP 불갑산 트레킹

불갑사 종합 안내도불갑사 종합 안내도

불갑산(佛甲山·516m)의 예전 이름은 낮고 부드러운 산이라는 뜻의 모악산(母岳山)이었다.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인도의 마라난타가 이 산에 불갑사를 창건하며 '불갑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상사화만 구경할 계획이라면 주차장~불갑사~동백골만 다녀와도 충분하다. 남녀노소 모두 무리없이 걸을 수 있다. 가장 흔하게 걷는 코스는 이번 상사화 트레킹을 소개한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구수재~동백골을 지나 원점회귀 하는 총 7.3km 코스다. 보통 서너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진한 꽃무릇 구경 더하자면 약간 더 여유를 갖는 편이 좋다. 동백골~해불암은 가파른 편이니 기억해두자. 해불암 근처에 음용수와 화장실이 있다.

불갑산 등산 안내도에서는 6개의 코스를 소개한다. 
주차장~수도암~도솔봉~용천봉~용봉~구수재~동백골~불갑사~주차장을 잇는 1코스는 총 5.8km로 정상은 가지 않는다. 2코스는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까지 갔다 다시 해불암을 통해 원점회귀 하는 6.1km의 코스. 가장 짧게 정상을 오를 수 있으니 해불암~연실봉 구간이 가파르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구수재~동백골을 지나 원점회귀 하는 7.3km가량 거리의 3코스다. 4코스는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노루목~장군봉~투구봉~법성봉~노적봉~덫고개~불갑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6.8km의 길이다. 주차장에서 동백골~구수재~연실봉~장군봉~투구봉~덫고개~주차장으로 돌아오는 5코스는 8.1km다. 주차장~덫고개~노적봉~연실봉~구수재~도솔봉~주자장으로 이어지는 6코스는 불갑산 가장 외곽을 돌아온다. 총 8.2km.

여행정보

주변 음식점
  • 일번지식당 : 굴비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굴비로 37 / 061-356-2268
  • 문정한정식 : 굴비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중앙로5길 16-10 / 061-352-5450
  • 한성식당 : 굴비백반 /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백수로 780 / 061-352-7067
  • 동락식당 : 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현암길 55-8 / 061-351-3363
숙소
  • 카리브모텔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대하길2길 38 / 061-353-1400
  • 영광글로리관광호텔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옥당로 74 / 061-351-8700
  • 신라모텔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신하리 7-7 / 061-353-3333
  • 노을연가 :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4길 185-37 / 061-352-0016
  • 골든비치모텔 :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법성포로 71-9 / 061-356-0101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msommer@naver.com)

※ 위 정보는 2012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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