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여행 더 오래가게, 옛날 그 맛
등록 2018.12.14 수정 2018.12.17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세대 간 추억을 잇는 옛날 그 맛들을 찾아 나섰다.
박노해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고.
그가 이야기하는 오래된 것들은 이렇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그렇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사실 오래된 것이라고 하면 둘 중 하나다. 고물 아니면 골동품. 고물은 쓰레기급이고, 골동품은 문화재급이다. 출발점은 똑같이 오래된 것에서 시작해 평가에 따라 지옥과 천당으로 나뉜다. 그런데도 시인은 다 아름답다고 했다. 고물에서 골동품급 가치를 찾아내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반인들도 그와 같은 눈을 가졌기에 그의 노래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낡고 오래된 것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된 것은 따스하다. 편안하고 아늑하고 친밀하다. 할머니의 젖가슴 같은 안락함이 있다.
그 속엔 그리운 추억, 그와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가 있다. 시간에 의해 빛이 바래고 비바람에 한 귀퉁이가 닳아 없어졌어도, 한 세월 같이 울고 웃던 동반자다.
서울시가 오래된 가게가 오래 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래가게’를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을지로와 종로 일대 39곳, 올해는 용산, 마포, 서대문, 은평 서북권 26곳을 선정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개업 후 30년 이상 됐거나 2대 이상 전통 계승 혹은 대물림한 가게를 대상으로 했다. 지금은 흔치 않은 방앗간, 대장간, 책방, 이발소, 목욕탕 등 시간의 흐름과 동행하는 공간은 물론이고, 수십 년째 추억의 맛을 지켜가는 가게도 있다. 그중 몇 곳을 골라 소개한다.
태극당
1946년 서울 명동에서 문을 열어 70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지금의 장충동 본점은 1973년 지어졌다. 광복을 꿈꾸던 청년(창업주 신창근)이 민족의 이상을 담기 위해 무궁화를 로고로 만들고 이름을 ‘태극당’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혼자 먹기 버거운 크기의 야채 사라다빵(5000원)과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모나카(2500원) 등 지난 추억이 떠오르는 먹거리가 인기다. 천장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와 진열장, 옛 글씨체를 살린 포장지 등에서도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서울 중구 동호로24길 7 / 02-2279-3152
1986년 문을 연 즉석 떡볶이집. 리어카 노점 장사를 시작으로 2대째 운영 중이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테이블이 꽉 찬다. 2인분 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맛도 좋아 단골이 많다. 떡볶이만 달랑 시키는 손님은 없고, 대부분 쫄면(1500원)에 어묵(1500원) 사리를 추가하고 튀김(3개 1000원)과 계란(2개 1000원)을 더해 먹는다. 마지막을 볶음밥(1인분 1300원)으로 푸짐하게 마무리하는 손님도 많다. 이렇게 먹어도 두 명이서 1만원을 넘기 힘들다.
서울 마포구 도화2길 3 / 02-717-9061
1978년부터 40년간 수많은 빵순이, 빵돌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 연희동 골목에서 줄곧 한자리를 지켜온 만큼 동네 주민에겐 영원한 단골 빵집으로 통한다. ‘피터팬’이란 상호는 이 집의 빵을 사 먹은 손님들이 세월이 흘러도 피터팬처럼 늙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붙였다고. 시그니처 메뉴는 ‘장발장이 훔친 빵(5500원)’과 ‘아기 궁뎅이(1800원)’다. ‘장발장이 훔친 빵’은 천연 발효종으로 만든 빵에 건포도, 체리, 오렌지, 크랜베리 등 10여 종의 건과일과 견과류를 듬뿍 넣어 맛이 다채롭다. ‘아기 궁뎅이’는 안에 크림치즈가 가득 들어 있어 달콤 상큼하면서도 고소하다.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10 / 02-337-4775
1971년 음악다방으로 처음 문을 연 독수리다방(일명 독다방)은 90년대 초반까지 신촌을 대표하는 명소로 통했다. 많은 대학생이 소개팅과 미팅 장소로 애용했으며, 소설가 성석제, 시인 기형도 등 많은 문인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늘어나면서 대학생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이후 경영난에 시달려 2005년 문을 닫았다가 2013년 원주인의 손자가 다시 문을 열었다. 내부 인테리어를 싹 바꾼 탓에 옛날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여느 카페와는 사뭇 다르다. 야외 테라스에서는 탁 트인 신촌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로 앞 기찻길에서 들려오는 열차 소리가 듣기 좋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36 독수리빌딩 8층 / 02-363-1222
1975년 개업해 40년 넘게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다. 대표 메뉴는 가미우동(5500원)이다. 고춧가루와 달걀을 넣은 얼큰한 국물에, 밀가루에 소금만 넣어 뽑은 면을 듬뿍 넣어준다. 단짝처럼 함께 주문하게 되는 주먹밥(1인분 2개 3800원)은 겨자 간장소스를 찍어 톡 쏘는 맛으로 즐기면 된다. 삼각형 모양으로 예쁘게 빚은 찹쌀밥 안에 다진 소고기가 들어 있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수박빙수(5000원)는 이대 출신 엄마들이 입덧 때 찾는다는 얘기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8길 2 / 02-364-3948
지하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몇 걸음 걸으면 고소한 냄새가 확 풍긴다. 2대에 걸쳐 50년 넘게 전병을 구워내는 ‘내자땅콩’이 주인공이다. 지금 주인장 김영남 씨의 아버지 김종호 씨가 26살 때 시작한 가게로, 땅콩전병을 만들던 친척에게 기술을 배워 가게를 열었다. 연탄불에서 가스불로 바뀐 것 외에는 옛날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대표 품목은 땅콩전병이다. 두 번 구워진 땅콩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어 씹을수록 고소하다. 파래전병과 생강전병도 인기가 좋다.
서울 종로구 사직로 111-1 / 02-730-7239
‘오래가게’ 오래된 맛
글 :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박은경(청사초롱 기자)
※ 위 정보는 2018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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